내가 되는 꿈

나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용기와 각오를 수반하는 일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소망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며 자신의 의지로 교체하거나 부술 수 없는 국가적, 가족적 내력들에 맞서고 투쟁해야 함을, 때로는 ‘사는 게 그런 거지’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반기를 들어야 함을 뜻한다. 안으로는 원치 않는 내력이 쇠말뚝처럼 박혀있고, 밖으로는 세상만사가 예고 없이 덮쳐온다.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 그저 다듬어지길 선택한다면 적당한 때에 주어진 무게를 버텨내며 노화 과정을 밟아나가면 될 뿐이다. 그렇게 존재하기만 하면 될 일을 기를 쓰며 진실을 바라보고, 용기를 내고, 상처 입는 과정을 반복한다.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 나를 멋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빚어내려고 하는 것들을 감내하며 온전한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오예지는 가족으로부터 대물림되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를 선택한 중국인 여성을 인터뷰하며 떠나온 타국에서도 미처 소멸되지 못한 슬픔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이어받은 아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눈물 흘리며 투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예지는 이 슬픔의 계보를 되짚으며 여성의 내면에 깊게 새겨진 우울이 수많은 세상의 상호작용 속에서 흔들렸던 개인, 집단 공동체 기억으로서의 슬픔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차 여성의 슬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과 동일시하게 된다.
 
내가 되는 꿈을 꾸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눈물에 잠식되지 않으려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슬픔을 마주하는 것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시작이다. 이에 오예지는 모래성 쌓는 행위를 제안한다. 자꾸만 흩어지는 나의 존재를 그러모아 눈물로 다지며 쌓아나가는 것. 그렇게 내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는 한없이 외롭고 기나긴 싸움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기를. 나를 위협하는 것들에 맞서고 몸부림치며 단단한 모래성을 쌓아나가기를. 우리 모두가 ‘내가 되는 꿈’을 꿀 수 있기를. 꿈을 꾸는 서로를 외면하지 않기를. 그렇게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글 김주연

<두 개의 반쪽짜리 고향>, 판넬에 혼합재료, 162.2×112.1cm, 2023

<스쿠온크의 모래성>, 각파이프, 우레탄폼, 철망, 시멘트, 벽돌, 110x71cm,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캐리어에 혼합매체, 76x61cm, 2023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가>, single-channel video(52′ 19″), color, sound, 2023

내가 되는 꿈 아카이빙, 2023